부동산 계약의 성립 기준과 해약금
부동산 거래의 두 가지 함정
우리가 어떤 거래를 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잘못된 상식이고 다른 하나는 거래 관행이다. 상식은 유용하지만 잘 못 알고 있는 상식은 독이 된다. 관행에 따르면 편하지만 법과 충돌하면 법이 이긴다. 이 두 가지 함정은 서로 맞물려 상승작용을 하기도 한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이런 함정 때문에 당황하는 사례를 자주 본다. "24시간 내에 해약하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죠?" 전혀 법적 근거가 없는 속설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청 상담실로 이런 문의가 자주 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의 시작은 계약이다. 먼저 계약금에 관한 함정부터 살펴보자.
계약의 성립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를 썼다고 해도 막상 계약금을 주고받아야만 비로소 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계약금이 지급되기 전까지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거래 현장에서도 계약을 파기해주는 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관행은 법의 해석과는 다르다. 관련 법규와 판례를 차례로 알아보자.
합의만으로도 계약은 성립된 것이다
민법 제563조 (매매의 의의)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이 조문에서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라는 구절을 주목하자. 계약의 성립은 약정, 다시 말해 당사자 간 합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합의 이외에 추가로 계약금이나 물건 등을 주고받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낙성계약(諾成契約)이라 부른다. 합의 이외에 추가로 물건 등을 인도해야 성립되는 이른바 요물계약(要物契約)과 구별된다. 우리 민법은 계약의 종류로서 증여, 매매, 임대차 등 14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낙성계약에 속하며 유일한 예외로서 현상광고만 요물계약에 해당된다.
이렇게 민법 규정으로 보면, 계약서를 쓰면 계약은 당연히 성립된 것이다. 계약금 지급이 아직 안됐다고 해서 이미 성립한 계약을 마음대로 파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거래 현장에서는 계약금이 지급되기 전까지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관행이 생기게 되었는가?
이 관행은 민법의 해약금 조항과 관련이 있다.
민법 제565조 (해약금) 제1항 매매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 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계약금을 손해 보기로 작정한다면 당사자 중 어느 쪽이나 해약할 수 있다. 계약금이 적으면 그만큼 해약의 부담도 적어지고 반대의 경우 부담이 커진다. 즉 계약금의 크기에 따라 해약의 부담이 달라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만약 계약금이 없으면 해약금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계약금을 주고받기 전에는 파기할 수 있다는 거래 관행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관행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2008.3.13 선고 대법원 2007다73611) 계약이 일단 성립하면 마음대로 파기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며, 계약금을 지급하기 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히 이 판결은 계약금 지급 전에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06나107557)을 뒤집은 점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구두 계약도 계약인가? - Yes and No
구두 계약도 계약이다. 다만 상대방이 부인하면 주장하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우리 민법은 당사자 간 합의만으로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 이를 낙성계약(諾成契約)이라고 하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다른 한편으로 불요식계약(不要式契約)이라고도 한다. 계약이란 구두로 할 수도 있고 서면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계약자유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 민법은 이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계약에 관한 규정들은 모두 이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구두 계약 자체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그런데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 없는 계약이 과연 잘 이행될 수 있을까? 구두로 합의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합의 내용 중 일부분에 대하여 서로 달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상대방은 저렇게 들었다는 것이다. 잔금 날짜나 가격 조건 등을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고 주장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 사실을 주장하는 쪽에서 이를 입증해야 한다. 증인을 세우거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구두 계약은 깨지고 만다.
대화 내용을 녹음해두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에게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서 효과는 있겠지만, 법적 증거력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는 법원에서 판단한다. 녹음은 편집에 따라 내용의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증거로서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계약서의 중요성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 장짜리 너무 간단한 계약서
시중에서 사용하는 부동산 계약서는 보통 한 장이다. 수십 쪽이 넘는 외국의 부동산 계약서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A4 크기 한 쪽에 복잡한 계약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웬만한 조건들은 구두로 하거나 아예 누락되기 마련이다. 분쟁의 씨앗을 처음부터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단순하다. 계약서에 구두로 합의한 사항들을 그대로 기재하면 되는 것이다. 계약서에 여백이 부족하면 백지에 작성하여 첨부하면 된다. 문제는 우리의 계약 관행이다. 합의 내용을 서류로 남기자고 하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서로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계약을 하느냐고.
이제 우리의 계약 문화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계약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하고, 특약조건은 자세하게 기재해야 한다.
가계약도 계약인가?
이번에는 계약금과 관련된 또 하나의 숙제-가계약금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가계약(假契約)은 계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약으로 가기 위한 임시 준비 단계로 보는 것이다. ‘가(假)‘라는 한자도 ‘거짓‘ 또는 ‘임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가계약금은 당연히 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현장의 중개사들도 가계약금은 돌려주는 것으로 유도해 왔다. 왜냐하면 가계약은 계약을 꼭 성사시키려는 중개사의 권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가계약금은 돌려준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흔들리고 있다. 가계약금을 받은 매도인이나 임대인들 중에서 못 돌려주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를 통해 문제점과 해법을 찾아본다.
J씨는 원룸을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으로 현재 비어 있어서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계약금이 없어 내일 다시 오겠다니까, 공인중개사는 그 방이 금방 나갈지도 모르니 일단 가진 돈을 맡기라고 한다. 그래서 20만 원을 임대인에게 주고 "가계약금조" 라고 적힌 영수증을 받았다. 다음날 J씨는 가족의 반대로 계약을 못 하게 되었다며 20만 원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임대인은 못 돌려주겠다고 한다.
임대인도 할 말이 있다. 20만 원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방을 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돈은 계약금 아닌가? 그러니 가계약금을 못 돌려주겠다. 이런 임대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 경우 법의 해석은 어떻게 될까?
중요 부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계약의 성립으로 본다.
판례에서는 가계약금의 반환 여부는 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계약이라는 이름에 구애 받지 말고 가계약의 합의 내용을 보고 이를 계약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계약의 준비 단계로 볼 것인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분의 기준이 무엇인가? 법원은 이에 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계약의 중요 부분이 확정되어 있는 경우는 조건부 계약으로 볼 수 있고 그것이 확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는 준비 단계의 계약으로 본다는 것이다. (부산지법 2003가합10578)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계약의 중요 부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보자. "가계약서 작성 당시 매매계약의 중요 사항인 매매목적물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으므로 원·피고 사이에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은 성립되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6.11.24.선고 2005다39594 판결)
위의 판례들을 정리하면,
① 계약의 중요부분이란 매매목적물, 매매대금, 대금 지급방법 등이다.
② 가계약 당시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조건부 계약으로 볼 수 있다.
③ 이 경우 법적 구속력이 있어 가계약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계약금은 돌려주는 것이다" - 이제는 과거의 관행
이제 제시된 사례를 위의 판례를 적용하여 풀어보자. 쟁점은 ‘가계약금 20만 원을 줄 때 계약의 중요 부분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례에서는 보증금과 월세가 이미 정해졌고 현재 방이 비어 있어 이사 날짜도 임차인에게 위임한다고 했다. 그러면 중요 부분에 대한 합의는 있었다고 보겠다. 그렇다면 이 가계약은 법적 구속력이 있어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비단 위의 사례뿐만 아니라 가계약은 대체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계약금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① 계약이 안 되면 돈을 돌려준다는 약속을 받아두거나,
② 계약이 안 되면 이 돈을 포기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계약금은 돌려주는 것이다.‘ 라는 관행은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한 상태에서 해약하면 해약금은?
해약과 관련하여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사례를 통해 문제와 답을 찾아본다.
아파트를 5억 원에 매매하고 계약금을 5000만 원으로 정했다. 계약금 중 1000만 원은 계약당일 지급하고 나머지 4000만 원은 3일 후에 송금하기로 했다. 그런데 계약 다음날 매도인의 사정으로 매수인에게 해약을 통지하면서 1000만 원의 배액인 20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랬더니 매수인은 4000만 원을 더 내라고 한다. 계약금이 5000만 원이니까.
해약금은 실제 지급된 1000만 원인가? 아니면 정해진 계약금 5000만 원인가? 당사자들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목소리를 높이기 마련이다. 해약금 관련 분쟁 상담을 해보면 현장의 공인중개사들은 1000만 원을 해약금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다음 판례를 보자.
계약금의 일부가 아닌 전액을 물어야 한다.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한 경우에도, 계약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07다73611) 따라서 파기하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 위약금은 얼마인가? 계약서의 위약금 조항에 따르게 된다. 시중에서 사용되는 부동산 계약서를 보면 대체로 "위약금은 계약금으로 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그러면 위약금은 5000만 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고 해서 오랫동안 해오던 관행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일반인들은 이 새로운 판례의 존재를 잘 모른다. 또한 판례는 특정 사건에 관한 판결이므로 이를 모든 경우에 일반화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위의 판례가 나온 지 약 5년이 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사례와 같은 분쟁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쟁을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해약금 분쟁을 예방하는 특약조항
위의 사례에서 만약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특약 조항을 기재했더라면 어떻게 될까?
"계약금 중 일부만 지급한 상태에서 해약 또는 위약하면 5000만 원을 해약금 또는 위약금으로 본다."
이 경우 당사자 간 합의가 우선이므로 해약금은 당연히 5000만 원이 된다. 관행이 어떻고 판례가 어떻고 따질 필요가 없다. 특약조항에 1000만 원을 해약금으로 기재할 수도 있다. 당사자 간 합의하기 나름이다. 현장의 중개사들은 대체로 5000만 원으로 정하기를 권한다. 해약금이 적을수록 당사자는 해약의 유혹을 받기 쉬워 계약이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줄의 특약조항이 사례와 같은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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