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유리는 밖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의 희뿌연 얼음덩이로 덧칠을 하고 여닫는 문고리가 손끝으로 쩍쩍
달라붙는 산속의 겨울 날씨에 늙은 삽살개는 아예 양지쪽만 골라 다니며 사지를 웅크린다.
뿌려 준 낱알곡을 먹으려고 찾아들던 산새들도 자취가 뜸하고 찬 바람 휘도는 눈밭으로는 하릴없이 오고 간 고라니며 토끼등의 발자국과 이름모를 짐승들의 자취가 추상화를 그린다.
가지마다 줄기마다 무겁게 올려졌던 눈송이들을 바람결에 푸르르 쏟아내는 소나무 사이로 촛점 잃은 햇살마저 아예 맥을 못춘다.
지난 연말부터 2013년 새해가 들어서서 까지도 모진 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27년인가 28년만에 찾아 온 혹한이라는 명패도 모자라 결국은 30여년만에 수은주의 눈금이 영하 25도 밑으로 내려섰다며 세상은 온통 난리법석이다.
거기에다 하루가 멀다하고 연거퍼 쏟아지는 눈소식은 눈치 코치도 모른채 지칠 줄도 모른다.
동심속으로 들어가 추억의 덜미를 붙잡아 내면서 마냥 좋아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씩 겨울철 행사려니 하면서 오는 눈이라면 모를까 이건 숫제 울며겨자먹기다.
아무래도 뭔가 크게 잘못되지 않고는 이런 변고(?)가 있을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망상까지도 편을 들고
나서는 판이다.
자동차의 왕래가 빈번한 도로의 제설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라지만 큰 길을 벗어 난 마을에 쌓인 눈은 당국의 손길이 미치기가 벅차다는 구실로 주민들 스스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퍼 지는게 현실이다.
트랙터를 소유한 주민의 자원봉사에 힘입어 마을기금의 일부로 농기계센터에서 제설작업대를 맞추어 제작하니 이게 최신형 농촌 제설차량이다.
여하튼 이정도 여건만이라도 감지덕지 하면서 감내하고 있으니 참고 견디는데 이골이 난 우리네 농투성이들의 속내가 불만과 불평을 표출할 낌새일랑 일찌감치 잊고 있었나 보다.
농장에서 마을길 까지의 진입로는 어차피 또 다른 작업절차를 거쳐야 하는게 당연지사.
정문에 들어서면서 완만치 못한 고갯길을 숨차게 올라서야 하는 나들머리가 결코 짧은 구간이 아니니 내린 눈의 상태에 따라 제설작업의 방법이 달라질 수 밖에 없어진다.
가볍게 인사치례로 내린 눈이라면 의례껏 대빗자루가 먼저 나가 가볍게 응수를 하는 것을 순서로 잡고
그 다음 단계는 얼마간의 힘을 주면서 몸으로 밀고 나가면 길이 열리는 현대식 넉가래나 눈삽이 행동으로 나서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절차를 치루고 나면 웬만해서는 드나들기에 과히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통행로를 확보 할 수 있는게 일반적인 산골 제설작업 과정이다.
그러나 어쩌다 내리는 폭설이 아니드라도 발목을 덮을 만큼 이상의 눈이 올때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우므로 농장의 특공대장 미스터포가 부르릉 거림을 시작하며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수하 병졸인 삽과 빗자를등을 대동하고 공격전선으로 궤도바퀴를 이동하는 수고를 해야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눈이 내린 후 시간이 잠시라도 지체하게 되면 산속의 기온은 여지없이 얼음공장으로 변하게 되는 심
통을 부리니 재빠른 동작으로 얼기전에 본래의 길바닥을 확보해야 하는게 우선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굼뜬 동작이기는 하지만 미스터포가 한차례 헤치고 지난 길로는 반드시 삽자루나 빗자루가 뒤를 따라 말끔하게 잔설을 치워주지 않으면 허사가 되고만다.
만약 이런 순서를 걸르기라도 한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보지 않고도 뻔할 뻔자의 미끄럼장으로 변하고 말기때문에 절대로 게으름을 피울 재주가 없는 강원도 산골짜기 형편이다.
일기예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농촌이라지만 유난히 많은 눈과 한파가 계속되는 엄동설한도 물론 때가
되면 어련히 제 길을 찾아가는 계절이 되련만 어서 빨리 지나가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다.
아궁이 불 훨훨 타고있는 구들방에 벗님네들과 둘러앉아 막걸리잔 이라도 기울이는 호사가 그립다.
처마끝으로 매달린 고드름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으로 비춰질 때 구름을 향해 오르던 굴뚝연기가 그립다.
장작이 이글거리는 난로가에 주저앉아 오가는 정담으로 지새던 지난 날의 얼굴들이 새삼스레 그립다.
푸짐하게 내려쌓인 눈더미가 마냥 고울 수 가 없는 건, 산속 고립이 결코 유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왼쪽의 빗자루 부터 넉가래. 눈삽. 사각철삽등이 출동준비 완료다.
웬만한 눈에는 다른 장비들이 출동해도 되지만 발목을 덮는 정도 이상의 적설량일 경우라면 어차피
제설기동대 대장으로 임명된 미스터포가 나서지 않고는 제대로 길이 뚫리지를 못한다.
나무그늘에 가려 햇볕이 제 역활을 못하는 정문 근처의 비탈길이 언제나 말썽이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미스터 포의 브레이드가 한 번 길을 헤치고 나면 뒤이어서 빗자루와 각삽등이 동원된다.
포크레인의 작업상황이 눈으로 확인된다.
날도 찬데 수고가 많구먼 미스터 포.
햇살이 좋고 날씨마저 따듯하면 이렇게 길이 훤해지는데 도대체 요즘의 추위는 베풀 줄을 모른다.
영하20도가 넘나드는 혹한속에 마을 들판을 지난 눈보라가 산으로 치닫는다.
추위에 떨며 잔뜩 웅크린 마을 한 가운데 인삼밭 지붕이 무겁다며 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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