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정당해산 심판청구 요지에서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목적이 위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이 같은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통진당 강령이 위헌이라는 법무부
▲통진당의 강령에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내용이 등장하며 ▲강령의 방향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고 있고 ▲그간 통진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정치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통진당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을 꾀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통진당 강령과 강령전문 해설을 분석해 보면 법무부의 주장이 크게 왜곡돼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가 통진당을 위헌·친북으로 몰기위해 억지 해석을 한 곳이 수두룩하다.
법부무는 정당해산 심판청구서에서 통진당이 사용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과거 김일성이 주장한 북한의 건국 이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선진 민주주의를 이룩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문제점 보완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북한과 김일성의 전유물적 용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왜곡된 주장과 견강부회도 유분수
‘민중주권주의’라는 용어도 위헌이란다. 통진당 강령에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와 “민중이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법무부는 이 문구가 한국 사회를 소수 특권 계급이 주인 행세하는 잘못된 체제라고 보는 통진당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라면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청구안' 통과시킨 두 주역, 정홍원과 황교안.>
황당한 주장이다. 강령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강령전문해설’에는 “특정계급의 이익만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편협한 계급정당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 “자본가 계급이라도 역사발전과 사회진보에 도움이 된다면 당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통진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왔다고 했다. 법무부는 민노당 창당 무렵인 1998년부터 통합진보당을 출범시키며 총선에서 연대한 2011년까지 북한의 지령을 받은 바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일심회, 왕재산 사건 등을 근거로 제시했지만, 이는 사실로 밝혀진 것 없는 단지 정치검찰의 주장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통진당 강령 들여다보면 ‘박근혜 공약’ 떠올라
통진당 강령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위헌 소지가 있는지, 법무부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특권 부패 정치구조 척결과 진보적 민주정치를 위하여’ ‘민생 중심의 경제체제 실현을 위하여’ ‘진정한 성 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체제를 위해’라는 4개 분야로 나눠 제시된 47개 항목에서 위헌적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47개 항목 중 상당 부분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과 일치하거나 유사했다. 검찰의 수사권 축소를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 부분은 서로 일치했고, 선거법과 정당법 개정 등을 통한 정치개혁 주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통진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령에 넣었다는 것 정도다.
정치개혁 분야에서는 삼권분립 구조 확립, 대선 결선투표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계파정치와 지역주의 청산 등을 강조한 통진당 강령이 박근혜 후보의 공약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받기 충분했다.
표현과 용어, 강도의 차이... 내용은 거의 흡사
역사의식에서도 통진당 강령이 돋보였다. 국가정책 주권 확립하고 친일 독재 행위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자유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된 선대 업적의 정당한 평가 등을 통해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 고용, 일자리, 소득분배, 보육, 의료, 중소기업 육성, 교육비, 여성, 노동, 지역발전 등 세부 항목에 들어가면 착시현상에 직면한다. 통진당 강령을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과 혼동할 정도로 서로 흡사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이 자신의 대선 공약을 그대로 지킨다면 이는 곧 통진당 강령 중 상당 부분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용어와 표현에서 일정 부분 다른 점이 발견될 뿐 내용은 흡사했다. 통진당 강령에는 ‘국가균형발전 정책 추진’이라고 돼 있는 게 박근혜 후보 대선공약에는 ‘지역균형발전과 대탕평 정책’으로 표현돼 있다.
<박근혜 공약집. 제대로 이행하면 통진당 강령 태반 실행하는 게 된다.>
박근혜 공약 제대로 이행하면 통진당 강령 실행하는 거나 마찬가지
재벌개혁과 관련해 통진당 강령은 ‘재벌 독점 해소와 불공정 행위 근절’을 표방했고, 박 후보는 대선공약집에서 ‘재벌 불공정 행위 근절과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일자리와 고용 문제에서 통진당은 ‘고용차별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일과 휴식의 공존’ 등을 주장했고, 박 후보는 대선 공약에서 ‘차별없는 고용시장’ ‘비정규직 해소’ ‘좋은 일자리 창출’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 등을 주장했다. 그놈이 그놈이다. 단지 표현과 강도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복지 분야에도 일치되는 게 많다. 통진당은 강령에서 ‘생애 주기별 공적서비스 확대’ ‘단계적 무상의료 구현’ ‘기초연금 추진’ ‘저소득층 생존권 보장’ 등을 주장했고, 박 후보는 ‘생애 주기별 복지정책’ ‘노인연금 지급’ ‘맞춤형 무상보육’, ‘저소득층 사회안전망 구축’, ‘양극화 현상 해소’를 약속했다. 양쪽 모두 비슷한 주장이다. 심지어는 용어까지 닮아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유사점이 많이 발견된다. 통진당은 ‘지속 가능한 경제체제 구축’ ‘지역경제 활성화’ ‘경제민주화 확실한 실현’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 등을 주장했고, 박 후보는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 체제 구축’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반드시 실현’ ‘양질의 중소중견기업 경제 기반’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강도에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질 뿐 내용적으로는 다른 게 별반 없다.
통진당 강령 위헌이면 박근혜 공약도 위헌
다른 점보다 유사점이 훨씬 많다. 통진당 강령과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을 직접 비교해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통진당 강령이 위헌이면 박근혜 후보 대선공약도 위헌이고, 박 후보 공약이 합헌이면 통진당 강령도 합헌이다.’
용어 사용과 표현, 주장의 강도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한쪽을 ‘위헌’으로 다른 쪽을 ‘합헌’으로 규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쉬운 비유를 하나 들겠다. 닭을 이용한 요리에는 종류가 많다. 튀김닭과 백숙 모두 ‘닭 요리’라는 범주에 속한다. 맛과 식감, 요리하는 방법이 다를 뿐 둘 다 닭으로 만든 요리다.
취향에 따라 프라이드치킨을 선택할 수 있고 푹 삶아 놓은 백숙을 선호할 수 있다. 튀긴 닭을 좋아하는 사람이 백숙을 애호하는 사람을 깐본다거나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 가지다.
헌법은 ‘범주’, 프라이드도 백숙도 모두 닭요리
헌법은 ‘범주’다. 프라이드와 백숙을 포함한 ‘닭 요리’를 헌법으로 비유한다면 새누리당과 통진당은 튀김닭과 백숙 중 각기 하나다. 박근혜 후보 공약이 프라이드치킨이라면 통진당 강령은 백숙인 셈이다. 맛과 형태가 달라도 모두 ‘닭요리’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의 근간과 특징은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다. 프라이드도 있어야 하고 백숙도 있어야 한다. 프라이드치킨만 닭요리라고 우기는 건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다. 박근혜 정부가 제 입맛만 인정하는 획일적 세상을 만들려 안달이다. 반민주적이다.
통진당 강령과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을 냉정하게 비교해 보시라. 차이는 다소 있어도 큰 범주에서 보면 별반 다른 게 없다. 무엇이 위헌이란 말인가. 통진당 강령이 위헌이면 박근혜 공약도 위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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