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자료-◑/ 문화·생활

[스크랩] 1980.12.08 록그룹 비틀스 리드싱어 존 레논, 뉴욕서 피살

하나부동산중개공인중개사 2013. 12. 8. 15:10

1980.12.08  록그룹 비틀스 리드싱어 존 레논, 뉴욕서 피살

 

 

 

 

 

 

 

 

존 레넌 암살범 '마크 채프먼(Mark David Chapman)'-매일신문, 2010.12.08.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9478&yy=2010

 

비틀스 리더 존 레논 피살(1980.12.8)-국제신문, 2010.12.07.

http://www.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gbn=sr&code=0300&key=20101208.22002210647


'비틀스' 존 레논 피격 사망(1980.12.08)'반전·평화 아이콘' 역사 속으로-경향신문, 2009.12.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2071731035


비틀스의 존 레논 피살(1980.12.08)-부산매스미디어뉴스, 2010.12.08.
http://www.pnpnews.co.kr/paper/news/view.php?papercode=news&newsno=5317


비틀스 존 레논 암살(1980.12.08)-충청투데이, 2008.12.08.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20


존 레넌 피격 사망… 못다한 '반전평화의 꿈'(1980.12.08)-경향신문, 2008.12.07.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2071821455

 

 

 

 

ㆍ‘반전·평화 아이콘’ 역사 속으로

1980년 12월8일 오후 11시.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 ‘다코타 하우스’ 앞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탄을 맞고 비틀거리다 고꾸라진 사람은 비틀스의 기타리스트 존 레넌이었다. 경찰이 출동해 레넌을 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지만 그는 숨을 거뒀다. 196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자 반전운동의 아이콘이던 한 음악인의 마지막 순간은 정말이지 갑작스럽고 황망한 것이었다.

피의자 마크 채프먼은 현장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강도는 아니다.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총을 쏜 것 같다”고 말했다. 레넌의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팬이 그의 집 앞에 꽃과 편지를 바쳤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그의 정신, 비틀스의 정신은 경박하면서도 진지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인 그 세대의 정신이 되었다”는 내용의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레넌은 40년 10월9일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57년 폴 매카트니를 만나 밴드 ‘쿼리멘’ 활동에 들어간 것이 비틀스의 시작이었다. 이어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합류하면서 비틀스는 4인조의 모양새를 갖췄다. 62년 발표한 첫번째 싱글 ‘러브 미 두’를 영국 차트 17위에 올려놓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비틀스는 이듬해 내놓은 음반 ‘플리즈 플리즈 미’ ‘프롬 미 투 유’ 등으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이 인기에 힘입어 대서양을 건넜고 64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레넌이 비틀스와 결별한 것은 69년이다. 레넌이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탓에 비틀스가 잠시 활동을 중단한 시기였다. 이후 레넌은 오노 요코를 만났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 ‘이매진’ ‘파워 투 더 피플’ 등의 명곡이 이 때 탄생했다. 팬들에게 레넌은 뛰어난 음악인이자 평화를 사랑한 이상주의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2002년 영국 BBC방송 여론조사에서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 중 8위로 꼽혔다.

 

/경향신문

 

 

 

비틀스 [ the Beatles ]

1960년대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영국의 대중음악 그룹.

 

 

음악 양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모두 리버풀 출신인 4명의 멤버는 (제임스) 폴 매카트니(1942년 6월 18일 태어남), 존 (윈스턴) 레논(1940년 10월 9일 태어나 1980년 12월 8일 뉴욕 시에서 죽음), 조지 해리슨(1943년 2월 25일 태어나 2001년 11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죽음), 링고 스타(본명은 리처드 스타키, 1940년 7월 7일 태어남)이다. 모두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비틀스를 결성하기 전에 다른 록 그룹에서 경험을 쌓았다. 1956년 매카트니와 레논 2명이 결성했고, 1957년 해리슨이 가담했다. 이 3명은 1962년에 죽은 한 사람과 그후 링고 스타로 교체된 또다른 멤버와 함께 1960년 비틀스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고 당대 팝 음악 시험무대였던 함부르크와 리버풀의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1962년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음반 계약을 맺고 다른 밴드에서 링고 스타를 스카우트했다. 이어 〈러브 미 두 Love Me Do〉·〈플리즈 플리즈 미 Please Please Me〉·〈쉬 러브즈 유 She Loves You〉·〈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 I Want To Hold Your Hand〉와 같은 음반이 발매되고 1962~63년 크게 히트하면서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록 그룹이 되었다. 1964년 초 위의 마지막 두 음반이 미국에서 발매되면서 '비틀스 광'(Beatlesmania)을 낳을 만큼 비틀스 선풍이 미국을 강타했으며 〈에드 설리번 쇼 Ed Sullivan Show〉에 출연하면서 미국 텔레비전에도 등장했다.

 

비틀스 음악은 본래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빌 헤일리 같은 미국 대중음악가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초기 록의 신선함과 자극을 포착하여, 레논과 매카트니의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서정성과 결합하면서 몇 년 간 이 그룹을 인기 정상에 자리하게 했다. 많은 상을 받으면서 음악계에서 인정받았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비틀스 멤버들에게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했다. 긴 머리, 독특한 옷차림, 환각제 사용, 인도 신비주의에 대한 심취로 전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는 확실한 기반 위에서(비틀스의 음반은 싱글, 앨범 모두 100만 장 이상 판매됨) 비틀스는 자유로운 음악 형식과 편곡을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결과 〈예스터데이 Yesterday〉 같은 발라드에서 〈페이퍼백 라이터 Paperback Writer〉같이 복잡한 리듬의 곡까지, 또 〈옐로 서브머린 Yellow Submarine〉 같은 동요에서 〈앨러너 릭비 Eleanor Rigby〉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이 나오게 되었다. 비틀스는 1966년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1967년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니 하츠 클럽 밴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표했는데 여러 노래들을 섞어놓은 것이 아니라 서로 극적 연결을 이루고 있었다. 전자 음악을 사용하며 무대에서는 낼 수 없고 스튜디오에서만 연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새로웠던 앨범이었다. 비틀스가 가진 권위 때문에 그들의 실험은 주된 층이었던 젊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새로운 음악적 표현 가능성을 열어 다른 연주가들도 모방하도록 했으며,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도 매력을 주었다. 다른 예술에도 참여하여 〈어 하드 데이스 나이트 A Hard Day's Night〉·〈헬프 Help!〉와 같은 영화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비틀스 멤버들은 대중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이 되고 각자가 다른 일에 관심이 많아져 1971년 해체되었다. 계속 재결합설이 나돌았지만 매카트니는 1971년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자신의 밴드인 '윙스'(Wings)를 결성했다. 해리슨은 혼자 활동했으나 1970년대에는 종종 레논, 링고 스타와 함께 일했다. 링고 스타는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컨트리 음악에서 주목을 받았다. 레논은 정치운동가인 아내 오노 요코와 함께 계속 음악활동을 하다 1980년 뉴욕 시에서 암살당했다.

 

/네이트 백과사전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