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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49.12.08 중국 국민당 정부 철수

하나부동산중개공인중개사 2013. 12. 8. 15:06

1949.12.08  중국 국민당 정부 철수

 

 

 

 

 

 

 

 

 

 

 

1949년 12월 8일 중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진 국민당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타이완으로 철수했다.

1945년 8월 일본군이 항복하면서 8년간에 걸친 항일전쟁이 끝나자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이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내전에 돌입했다.

결국 이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중국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고, 패배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본토의 3백분의 1도 되지 않은 타이완으로 철수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베이에 수도를 정해 중화민국을 계속 유지하게 됨으로써 오늘날 2개의 중국이 되었다.

 

/부산 매스미디어뉴스

 

 

 

 

국민당 [ 國民黨 ]  KMT,국민정부,중국국민당

1928~49년 중국 본토의 대부분을 통치했던 정당.

 

1949년 이후에는 장제스[蔣介石]와 그 후계자들의 지도로 타이완[臺灣]을 통치했다. 원래 중국 제정(帝政)을 무너뜨리기 위해 활동하던 혁명연맹으로 중화민국 첫해(1912)에 창당되어 첫 중국의회에 참여했으나, 의회는 군사 쿠데타(1913)에 의해 곧 해산되었다. 이렇게 되자 당 지도자 쑨원[孫文]은 처음에는(1914) 중국 비밀결사를 거울삼아서, 그후에는(1923~24) 제정러시아 볼셰비키당의 지도를 받아 당을 더욱 결속시켰다. 국민당은 소련의 도움과 충고, 그리고 중국공산당(1924~27)과의 긴밀한 협조 덕분에 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925년 쑨원이 죽자 당의 통치권이 점차 장제스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지역 군벌들의 자치권을 없애거나 제한하여 중국 전체를 국민당의 지배하에 두었다(1926~28). 장제스의 통치원칙이 바로 국민당의 통치원칙이 되어 점차 독재적으로 되긴 했으나 전체주의적이지는 않았으며, 당 정책은 쑨원의 ' 삼민주의'(三民主義:민족·민주·민생주의)에 기초를 두었다. 민족주의는 중국이 다른 국가들과 대등한 위치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한 것으로, 일본의 침략(1931~45)을 물리치고 서방과 중국이 맺은 불평등조약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민주주의는 연이은 헌법개정(1936, 1946)으로 그 실현을 보고자 했으나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부패를 뿌리뽑으려는 노력인 민생주의 또한 별 성과가 없었다. 그 이유는 지도력이 약한데다 밖으로는 일본과의 전쟁, 안으로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는 더욱 심한 내전이 일어났다. 1949~50년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자 국민당의 군대, 정부관료들, 20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들이 장제스를 따라 타이완으로 도피했다. 이 섬은 중국 근해의 많은 섬들과 떨어져 있어서 국민정부의 좋은 영토가 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국민당은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장악한 실질적인 독재정당으로 군림했다.

 

/네이트 백과사전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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